활자안에서 유영하기

고통이 없다고 할지라도 타인이 고통받지 않을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인간의 선함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스템을 세우는 것. 공감이 결여된 사람마저 따라야 할 규범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럴 때 차라리 인간이란 이런 걸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싶고, 그런 것을, 조금 믿어보고 싶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아돌프 아이히만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은 과정을 기록한 재판 보고서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한나 아렌트는 재판을 방청하고 각종 기록을 조사하여 아이히만이라는 한 인간이 전체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탐구한다. 아렌트 자신도 말하듯 이 책은 인간 일반의 악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고, 나치라는 사태를 포괄적으로 개관하는 연구서도 아니다. 오로지 아이히만이라는 한 인간에게 주어져야 하는 정의定義가 무엇일지를 탐구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아이히만의 개인적인 특성이나 이 재판의 법적 타당성, 체포 과정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과 같은, 나치 자체와는 관련이 적을지도 모르는 쟁점들을 포함하고 있다.\n\n아렌트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중상층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그 계급을 유지할 만한 능력을 가지지는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만 26세였던 1932년에 나치에 가입하여 1933년 정보부에 들어갔다. 1934년에는 친위대 제국지휘관 보안대에 들어갔는데, 그는 그곳이 제국 보안대라고 생각했으나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실망했다. 그러나 직책이 상승할수록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가 보안대에서 처음 읽었으며 평생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시온주의 도서인 《유대인의 국가》로, ‘이 책으로 인해 아이히만은 곧바로 그리고 영원히 시온주의자로 개종했다.’* 그는 유대인이 유대인만의 땅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고 이는 나치의 방향과도 (다른 의미로) 일치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는 최선을 다해 효율적이고 조직적으로 유대인을 옮겼다. 아렌트에 따르면 ‘이 계획의 가장 큰 장점은 유대인을 유럽으로부터  –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김겨울> 중에서

서로 다른 고통으로 연대한다. 인간에게 남은 선함이 있다면 이것이다. 완전히 다른 사례들에 무관심한 채로 그들을 뭉뚱그리거나,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나의 행복이 타인의 고통 위에 세워지지 않았는지 성찰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나에게 주어진 –

나를 가장 괴롭게 한 것은 한 인간의 자기기만과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가 집단의 해악적인 필요와 맞아들어갈 때 얼마나 깔끔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아이히만이라는 인물도, 그를 행동하게 만든 시대도 모두 역하게 다가왔다. 아렌트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자신의 재능과 직책이 유대인들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일들이 이루어져야 했다면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드 구주처럼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권리 옹호》(1790)와 《프랑스 혁명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역사적 및 도덕적 관점》(1794) 등을 썼던 급진파 정치사상가답게 철학과 정치의 언어로 시대를 비판했다. 책에서 그는 여성 역시 남성과 동일하게 이성을 지닌 존재이며, 여성을 동등하게 교육해야만 인간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생 자신의 생각을 정연한 글로 남김으로써 스스로의 주장을 인생으로 살아냈다. –

. “제가 숭배하는 유일한 여신은 시간입니다.” 괴테는 썼다. 결국 시간은 흐르리라. Tempus, edax rerum(시간,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자). –

스토아 철학은 이후에도 계속 서양 역사에 선명한 인장을 남겼다. 로마 시대에는 만민법 제정에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스토아 철학의 입장에서 이성을 지니고 있는 모든 인간은 자연의 섭리 속에서 동등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에게 동일한 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제논은 인간 전체가 공통의 섭리와 하나의 질서 아래 살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인주의적이면서도 세계시민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스토아 철학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말이다.\n\n스토아 철학의 유물은 지금의 영어 단어에도 남아있다. ‘stoic’이라는 영어 단어는 금욕적이고 절제한다는 뜻의 단어다. 여기서 나타나듯 스토아 철학은 보통 금욕주의로 여겨진다. 스토아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은 이성(로고스)이라는 원칙하에 질서정연하게 굴러가고 있고, 모든 일은 섭리에 따라 일어난다. 그 속에서 인간 역시 섭리에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하며, 섭리에 따르는 삶이란 우주의 원리를 받아들이고 평정심을 갖는 삶이다

시간의 전체와 실체의 전체를 항상 상상하라. 모든 개별 부분은 실체에 견주면 무화과 씨에 불과하고, 시간에 견주면 송곳을 한 번 돌리는 순간에 불과하다.\n\n—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천병희 옮김, 숲, 10권 17장 –

《명상록》만큼 와닿는 책은 없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허무를 극복하라고 말하지 않고 허무 위에 삶을 세우라고 말한다. 나를 가장 작게 만들고 가장 초라하게 만들어 시간 앞에 겸손하도록 무릎 꿇린다. –

김겨울 : 나랑 잘 맞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서, 두시간만에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